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츠버그 스틸러스/역사 (문단 편집) === 창단부터 2012년까지 === 1933년에 운동선수 출신 아트 루니의 주도로 피츠버그 파이리츠[* [[피츠버그 파이리츠|같은 도시 야구 팀]]과 같은 이름이었다. 2000년까지는 홈구장도 공유했었다.]로 창단했다. 그러나 연고지 펜실베이니아 주에 가난한 이민 노동자가 많았고, 루니 구단주 본인도 재정이 넉넉지 않은 터라 팀 유지가 어려웠다. 1940년에 팀명을 스틸러스로 개칭해 도약을 꾀했으나 재정난이 여전해 그해 말엽에 뉴욕 출신 철강 재벌 자제 알렉시스 톰슨에게 팔았다.[* 반면 전 구단주 루니는 필라델피아 이글스 지분 절반을 샀다.] 새 구단주 톰슨은 보스턴에 연고를 이전하려다 구단주들의 반대로 실패했고, 결국 루니-버트 벨과 팀을 맞바꾸어 지분을 돌려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주축 선수들이 징병되는 바람에 1943년에는 [[필라델피아 이글스]]와 연합하여 시즌을 치르고, 1944년에는 [[애리조나 카디널스|시카고 카디널스]]와 연합하여 시즌을 치르기도 했으나, 월트 키슬링과 그리시 닐 두 감독이 대립해 공격 팀과 수비 팀으로 나누는 등 불협화음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이 2시즌은 공식적으로는 스틸러스가 리그에 참가하지 않은 시즌으로 스틸러스의 역사에선 빠져 있다. 1945년 종전 이후부터 선수들이 돌아와서 정상적으로 리그에 재참여했으나, 1971년까지 38년간 승률 5할을 넘긴건 딱 5할 포함 단 12번으로, 그 기간 동안 플레이오프에 나간 건 디비전 플옵이 처음 도입된 1947년 단 한 번뿐이다. 그나마도 [[필라델피아 이글스]]에게 21-0으로 완패했다. 1951년부터 부임한 프랜시스 포거티 단장은 1955년 드래프트에서 연고지 출신 쿼터백 [[조니 유나이타스]]를 뽑았으나, 킹슬리 감독이 쿼터백을 할 만큼 머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시즌 전에 볼티모어 콜츠로 팔아버리는 실책을 벌였다. 인기조차도 같은 구장을 쓰는 야구 팀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밀렸다. 이 불행했던 프랜차이즈의 역사를 바꾼 것은 1969년에 전 볼티모어 콜츠 OC 척 놀이 감독으로 부임한 것이다. 부임 첫해에는 1승 13패라는 절망적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놀 감독은 탁월한 안목으로 [[쿼터백]] [[테리 브래드쇼]], [[러닝백]] [[프랑코 해리스]], [[와이드 리시버]] 존 스탈워스, 린 스완 콤비 등의 공격진과 일명 철의 장막(Steel Curtain)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디펜스를 구축하였고[* '민' 조 그린('Mean' Joe Green), 잭 햄(Jack Hamm), 그리고 잭 램버트(Jack Lambert) 같은 괴수급 수비수로 구성된 철벽 수비진들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플레이가 꽤 과격했다는 것. 한 예로 잭 램버트는 앞윗니들이 다 빠져 없었을 정도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he Immaculate Reception 01.gif|width=100%]]}}} || || 중계화면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he Immaculate Reception 02.gif|width=100%]]}}} || || 쿼터백 [[테리 브래드쇼]] 시점[* 32번 선수가 공을 잡고 터치다운을 성공한 [[프랑코 해리스]].] || 프랑코 해리스가 1972년 AFC 디비저널 챔피언쉽에서 [[존 매든]]의 [[오클랜드 레이더스]]를 상대로 종료 22초 전 극적인 역전 터치다운을 찍어내는 일명 [[https://en.wikipedia.org/wiki/Immaculate_Reception|The Immaculate Reception]]을 만들어내며 가능성을 확인하더니 그후 이들을 주축으로 1974, 1975, 1978, 1979 시즌까지 4번의 슈퍼볼 우승을 차지하는, 그야말로 '1970년대의 팀'으로 군림했다. 그는 1980년대에도 팀을 이끌었으나 1970년대 스틸러스의 영광을 이끈 주역들이 은퇴하고 1982년에 리그 측이 패스를 권장하는 쪽으로 규정을 변경하자,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팀은 그저 그런 성적을 유지했다. 척 놀 감독이 은퇴한 뒤 1992 시즌부터 연고지 출신의 빌 카워 전 캔자스시티 치프스 DC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수비진을 재건해 부임 초기에는 4연준에 빛나는 AFC의 초강팀 [[버팔로 빌스]]에 막혀 번번이 슈퍼볼 진출에 실패했으나, 1995 시즌에 슈퍼볼에 복귀했다. [[댈러스 카우보이스]]와의 슈퍼볼[* 여담으로 이 게임은 당시 개국 초창기였던 [[SBS]]에서 위성 생중계를 해줬다.] 경기에서는 아쉽게도 팀 역사상 슈퍼볼 첫 패배를 기록했으나 이듬해 세인트루이스 램스로부터 [[제롬 베티스]]라는 뛰어난 [[러닝백]]을 사서 그를 중심으로 공격진을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강팀치고는 [[쿼터백]]이 약간 부족해서 2% 아쉬운 성적을 연속으로 기록하다 2003년 6승 10패로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2000년부터 부임한 케빈 콜버트 단장은 2004년 드래프트에서 오하이오 마이애미대 출신 쿼터백 [[벤 로슬리스버거]]를 11번으로 픽해 동년 시즌에 15승 1패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으로 플옵에 진출했으나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만나 로드니 해리슨에게 87야드짜리 인터셉트 터치다운을 얻어맞는 등 수비진이 무너지며 41-27로 패배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인 2005 시즌 [[시애틀 시호크스]]를 꺾고 통산 5번째 슈퍼볼 우승을 차지하고, 2008년에 전 미네소타 바이킹스 DC 마이크 톰린이 감독으로 부임해 제임스 해리슨, 트로이 폴라말루, 라이언 클락 등 막강 수비진을 구축해 부임 첫 시즌에 [[애리조나 카디널스]]를 꺾고 NFL에서 처음으로 6번 슈퍼볼을 우승한 팀이 되는 등 21세기 AFC의 4강 체제를 확고히 구축해왔다.[* 2001년 이후 열린 총 16번의 슈퍼볼에서 2002년 [[오클랜드 레이더스]]를 제외하고, [[톰 브래디]]([[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6회), [[페이튼 매닝]]([[인디애나폴리스 콜츠]]-[[덴버 브롱코스]], 4회), [[레이 루이스]]([[볼티모어 레이븐스]], 2회), [[벤 로슬리스버거|빅 벤]](3회) 네 명이 이끄는 소속 팀에서만 AFC 챔피언이 나왔다. 다만, 슈퍼볼 37의 오클랜드 레이더스도 리치 개넌이라는 준수한 MVP 쿼터백에 [[제리 라이스]]라는 전설적인 WR이 있던 시절이라 갑툭튀한 것은 아니었다.] 2년 뒤인 2010 시즌에도 또 슈퍼볼에 진출했으나, [[애런 로저스]]의 [[그린베이 패커스]]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척 놀 시대 이후 2012 시즌까지 43년간 5할 이하의 승률을 기록한 적이 단 9번일 정도로 꾸준한 강팀이며, 43년간 척 놀-빌 카워-마이크 톰린이라는 명감독 3명이 부임했을 정도로 명감독이 연속으로 팀을 이끌고 있으며 이것이 스틸러스의 가장 큰 힘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또한 잭 헤일리(1971~1990)와 케빈 콜버트(2000~) 두 명단장들도 힘을 보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